“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01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자기 소신을 명료하게 드러낸 이 말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이 말은 현재까지도 윤 총장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당시 윤 총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 자리에 있었으나,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그러자 윤 총장은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국정감사에서 “외압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도 관계있는 얘기냐”는 질문에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후 윤 총장은 현 여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적폐청산의 칼이 됐다. ‘박근혜-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윤 총장은 지난해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당시 민주당은 “적폐청산과 국정농단 수사를 마무리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며 극찬했다. 박범계 의원은 트위터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겠다는 후보자가 주권자인 국민에 충성하는 검찰조직으로 조직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그러나 윤 총장을 향한 민주당의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양측의 갈등은 그가 검찰총장에 오른 후부터 시작됐다. ‘조직을 사랑하는’ 윤 총장과 ‘검찰개혁’을 기치로 내건 민주당의 대립이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엄정하게 수사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충실히 수행했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특혜 의혹까지 건드렸다.
여권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 검찰개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은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양측의 갈등이 절정에 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윤 총장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국정감사장이었다. 지난 22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 총장은 7년 전과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발언을 내뱉었다.
윤 총장은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장관은 부하가 아니다”며 추 장관을 비판했다.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서도 “위법하고 근거와 목적이 보이는 면에서 부당한 게 확실하다”고 못박았다.
민주당도 윤 총장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윤 총장 내정을 환영했던 박범계 의원은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비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3일 “윤 총장의 발언과 태도는 검찰 개혁이 왜,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지, 공직자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공수처 설치의 정당성과 절박성을 입증했다”고 했다.
7년 전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대하는 윤 총장의 태도는 한결같다. 당시 정권을 향해 칼을 들이댔고, 정권에 의해 배척당하고, 국정감사에서 법무부 장관을 비판했다. 7년 전에는 수사팀에서 배제됐으며, 이번 정권에서는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했다.
변한 것은 윤 총장을 대하는 민주당의 입장이다.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는 윤 총장의 소신을 지지했던 민주당이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