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신철희(이하 신) : 우리나라의 2030 청년세대는 작게는 한국정치를, 크게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주역들로 성장해나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주초에 수업을 진행할 경우에 학생들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주말과 휴일에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입니다. 단연 흔한 대답이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응답입니다. 다들 일하느라 피곤한 탓인지 제가 반드시 읽으라고 당부한 책을 읽은 학생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도 만나고, 영화 관람이나 미술관 구경, 또는 등산과 관광 같은 다양한 체험과 시도를 해보라는 주문을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이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얻는 지식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면 이론만으로는 대처나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과 문제들에 자주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인 586 세대의 가치관과 경험담의 무게중심이 특정 방향으로만 지나치게 편향돼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의식만큼이나 중요한 게 586 세대가 왜 오늘날처럼 완고하고 편벽된 집단이 됐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입니다. 인간에 대한 입체적 경험과 대학 캠퍼스 바깥에서의 여러 가지 활동들이 충분하지 못하면 자기만의 우물 안 세상에 갇히기가 쉽습니다. 우물 속의 세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면 현재의 586 정치인들이 몰두하고 있는 형태의 지독히도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치에만 골몰하게 됩니다.
공희준 (이하 공) : 교수님께서 마키아벨리 전문가라는 말을 제가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 : 전문가라고 하면 상당히 과장이고, 제가 정치사상을 전공한 터라 상대적으로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제가 사실 최근에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선택한 책 한 권을 거의 완성해놓은 상태입니다.
공 : 어떤 내용과 기조의 책인가요?
신 : 마키아벨리의 대표적 저작으로 일컬어져온 「군주론」을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관점과 잣대로 해석하고 재조명한 책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성공한 군주가 되려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필수적 과제라고 「군주론」에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위원님께서도 그 책을 잘 이해하고 계실 것 같은데….
공 : 저는 마치 삼국지연의 읽듯이 심심풀이 땅콩 차원에서 대충 훑어본 탓에 소장님과는 달리 「군주론」에 담긴 본원적 메시지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심오한 통찰력은 없습니다.
신 : 아무래도 겸손하신 말씀 같은데…. (잠시 쉬었다가) 「군주론」의 6장은 자신의 역량과 군대에 힘입어 성공한 군주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장인 7장은 행운과 용병에 의지해 잠시 성공했다가 결국에는 몰락한 군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 : 자신의 군대를 현대 용어로는 ‘국민군’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신 : 예, 그렇죠. 마키아벨리가 성공한 군주의 표본으로 6장에서 열거한 인물은 통틀어 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모세, 아테네의 창업자 테세우스,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 페르시아의 창건자 키루스 대왕이 그들입니다.
공 : 네 사람 전부 위대한 창업자들이네요.
신 : 저는 이 사람들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분석과 평가를 몇 년에 걸쳐 계속 연구할 정도로 이 부분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어떠한 연유로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모세, 테세우스, 로물루스, 키루스 네 사람에게서 그들을 다른 여느 정치인들로부터 변별시켜주는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공통점이 발견됐습니다.
공 : 어떠한 공통분모인가요?
신 : 특이하거나 색다른 건 아닙니다. 네 명 모두 청년시절에 자기가 미래에 영도하게 될 인민들의 삶속으로 철두철미하게 녹아들어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대중과 한 몸이 되어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의리 있게 동고동락했습니다.
공 : 좁은 울타리 안인 대학가 주변을 평생 헬리콥터처럼 빙빙 맴도는 남한사회의 586 세대나 진보 지식인들과는 완전히 천양지차네요.
능력은 길고 행운은 짧다
신 : 위대한 건국자는, 불세출의 창업자는 신화 속에서 반인반수의 영웅으로 신비롭게 포장된 것과는 다르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낯선 인물이 아닙니다. 이웃과 애환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민중과 고락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인민의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 배가 되어야 국가의 장기적 진로를 제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칠 때 선박을 안전한 항구로 올바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민대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적시에 정확하게 분별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훌륭한 군주가, 성공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분별력은 인민과 나란히 호흡하며 체득되고 단련되고 검증된 리더십의 소유자들만이 가질 수가 있습니다.
공 : 위대한 창업자 4인방과 선명하게 대비될 수 있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요? 운발로 반짝했다가 궁극적으로 좌절한 비운의 아이콘으로요.
신 : 그와 같은 불운한 풍운아 사례로 「군주론」 7장에 등장하는 인물이 체자레 보르지아(서력 1475년~1507년)입니다. 그는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후광 덕분에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 지방에 해당하는 로마냐 지역의 지배자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냐가 그와는 아무런 연고관계가 없는 고장이었으므로 그곳 군대는 남의 군대였고, ‘아빠 찬스’를 썼다는 맥락에서 그는 운이 매우 좋았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체자레 보르지아가 깜도 안 되는 졸렬하고 무능력한 그저 그런 금수저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남의 힘으로 군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보르지아는 아직 젊은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지모를 갖춘 영민한 지도자였음이 분명합니다.
공 : 영리하다는 건 곧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신 : 체자레 보르지아가 우선적으로 주력한 정책은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용병대를 믿을 수 있고 듬직한 국민군으로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는 이 일에 거의 성공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창 치세를 이뤄갈 나이인 30대 초반에 급작스럽게 몰락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⑦회에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