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낚시인들에게는 최상의 계절이다. 각종 어종으로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해안은 더욱 인기다. 노래미, 붕장어를 비롯해 냉수대가 밀려오게 되면 버티는 힘이 좋은 성대 손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4대 돔 중 하나인 감성돔 손맛을 볼 수 있지만 올해부터 5월 한 달간 금어기로 지정되면서 감성돔의 째는 손맛은 6월로 넘겨야 한다. 어종 보호를 위한 것이니 전문 낚시인들을 떠나 낚시 초보자들도 모두 지켜야 할 것이다.
5월 6~7일 이틀간 다녀온 출조지는 강원도 양양의 설악해변이었다. 양양·속초·고성에는 많은 포인트가 있지만 설악해변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악해변은 수심이 깊지 않고 온통 모래밭이라 물고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굳이 설악해변을 출조지로 정한 것은 함께 간 대학 동기와 밤에 조용히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얘기를 할 수 있어서였다. 다른 곳은 많은 조사들께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렵고 또한 밤에도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설악해변으로 가기 전 속초항에 잠깐 들러 던져봤다. 자리를 잡고 계신 다른 조사께 입질 현황을 물어보니 "입질이 전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 날씨가 변덕을 부렸고 더욱이 온도가 예년보다 낮아 수온도 오르지 못한 것이 요인인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3주 전에 냉수대가 동해시까지 들어온 걸 고려하면 입질을 바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1시간가량 던져봤지만 역시 입질은 전혀 없었다. 비싼 참갯지렁이를 미끼로 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인근의 현지인 맛집을 검색해 찾아갔다. 속초항과 동명항 사이에 있는 '뉴전원식당'은 현지인들에게 두루치기로 소문난 곳이라고 한다. 당연히 두루치기를 주문했다.
주요리인 두루치기가 나오기 전에 깔린 밑반찬은 여느 백반집과 다르지 않았지만 조금 투박해 보였다. 얼른 몇 가지를 집어 맛을 봤는데 강원도 특유의 심심한 맛이 아니었다. 오히려 짠맛이 강했다.
이윽고 두루치기가 나왔는데 돼지고기를 길게 썰지 않고 깍둑썰기를 했다. 푸짐하게 담긴 김치는 그야말로 입맛을 당겼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지만 돼지고기와 신김치를 한입 먹는 순간 침이 흘러나왔다. 무척이나 익숙한 맛이었다. 주인장께 혹시 고향이 충청도가 아닌지 물어보니 충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맛이 왜 그리 익숙한지 생각해보니 충남이 고향이신 어머니의 맛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충북 충주가 고향이신 주인장께서 속초에 와서 식당을 하시는 건데 오랜만에 어머니의 손맛을 볼 수 있어서 나도 모르게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특히 거무스름한 집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밥도 먹었으니 본격적으로 낚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먹거리천국인 속초중앙시장에 잠깐 들렀다. 속초중앙시장은 전국적으로 소문난 곳이다. 식어도 맛있다는 닭강정을 시작으로, 전(煎), 씨앗호떡이 유명하고 말린 채소나 해조류에 찹쌀풀을 묻혀 기름에 튀겨내는 부각 본점이 있다. 여기에 강원도의 대표 먹거리인 감자전, 메밀전병을 손님 눈앞에서 부쳐 파는 곳도 여럿이다.
우리는 4년 전부터 들르는 '오순네 전집'에 들렀다. 이곳 사장님은 손님이 와도 살갑게 맞이하는 법을 모르는 듯 무심하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낯이 익은 듯 인사를 건네면서도 '뭘 사려는 거지?'라는 눈빛을 보낸다. 기자는 감자전과 녹두전 그리고 메밀전병에 옥수수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감자를 갈아놓은 양푼을 꺼내 크게 한 국자 반을 철판에 부어 감자전을 부쳤고 그 옆에 미리 부쳐둔 녹두전을 얹어 데웠다. 먹음직한 감자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봉지를 건네받은 우리는 곧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설악해변으로 이동했다. 2물이라 물흐름이 빠르지 않았다. 물론 동해는 물때 영향이 서해보다는 적지만 어류들은 본능적으로 물때를 알기 때문에 어쨌든 들물(밀물)과 날물(썰물)은 중요하다.
설악해변으로 자리를 옮겨 한 대에는 참갯지렁이를 달고 다른 한 대에는 청갯지렁이를 달았다. 같은 갯지렁이지만 참갯지렁이는 가격이 소고기만큼이나 비싸다. 비싼 만큼 감성돔과 같은 고급 어종을 잡을 때 많이 쓰인다. 그와 비교해 청갯지렁이는 많이 사용되는 미끼로 가격이 저렴하다. 그렇다고 물고기를 유인하는 능력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청갯지렁이를 잘 먹지 않는 어종이 있을 뿐이다.
두 대를 던져놓고 맥주를 한 모금 할 때쯤 분홍색 낚싯대의 초릿대가 앞으로 고꾸라지듯 휘청거린다. 곧바로 낚싯대를 낚아채고 릴을 감는데 묵직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설악해변에서 잡은 것이라고는 불가사리가 전부였는데 분명 불가사리는 아니었다. 잘 딸려 오다가 저항을 한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는 붕장어임에 틀림없다.
80여m를 끌어 물 밖으로 나오게 하니 붕장어였다. 길이는 대략 40cm는 넘어 보였다. 함께 간 대학 동기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갯벌도 아닌 모래밭에서 붕장어가 나왔으니 낚시에 문외한인 이 친구의 놀람도 이상하지 않다. 막상 붕장어를 잡은 나로서도 어안이벙벙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어종을 잡지 못했는데 처음 나온 것이 붕장어였으니 말이다.
이 녀석은 비싼 참갯지렁이가 아닌 청갯지렁이를 물고 나왔다. 붕장어는 먹성이 좋아 닥치는 대로 먹는다. 그럼에도 청갯지렁이를 물었으니 어찌 보면 참 불쌍한 녀석이다.
붕장어도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으니 한 마리가 나왔다면 또 나올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얼른 미끼를 갈아 끼고 조금 전에 나왔던 곳을 향해 던졌다.
2021년 들어 두 번째 낚시인데 제대로 된 손맛을 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가 켜놓은 음악과 맥주가 있으니 흥은 더욱 달아오른다.
그렇게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전보다 더 큰 입질이 온다. 거짓말 조금 보태 초릿대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크게 휜다. 전광석화와 같이 낚싯대를 들어 채고 릴을 감는데 릴이 감기지 않는다. 순간 돌에 걸린 줄 알았다. 낚싯대를 낮춰 1~2초가량 쉬고 다시 낚싯대를 채 릴을 감는데 조금 감긴다. 그런데 20여m 딸려오다가 다시 릴이 감기지 않는다. 분명 뭔가 걸렸는데 어떤 녀석인지 감이 안 온다.
릴을 감았다 쉬었다를 반복하는데 붕장어 특유의 몸짓이 느껴진다. 장어가 맞다면 어마어마한 크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발 줄이 터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사투를 벌이다 끌어낸 녀석은 70cm는 족히 넘을 대단한 녀석이었다. 대가리는 어른 주먹의 3분의 2가량이었다. 80cm 넘는 붕장어를 잡아봤지만 무게는 이 녀석이 압도적이다. 대략 1kg 가까이 될 것 같았다.
또다시 입이 벌어진 친구에게 잡은 붕장어 두 마리를 손질해서 주겠다고 하니 벌어진 입이 금방 싱글벙글해지면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낚시인의 미덕이다. 아주 오랜만에 손맛도 봤으니 더 잡을 필요는 없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숙소로 들어와 강원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옥수수막걸리에 감자전, 녹두빈대떡, 메밀전병을 안주로 해서 가볍게 한잔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친구는 3000원짜리 백반에 꽂혀 있었다. 이 식당은 완전한 현지인 식당으로 문 여는 시간은 정오 때쯤인데 주인 할머니 마음이라고 한다. 할머니가 식당 문을 열고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한둘씩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반찬 가짓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숙소에서 속초항까지 차를 운전하고 가 그곳에 차를 대고 식당을 향했다. 식당은 속초중앙시장 한 귀퉁이에 있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니 이미 동네 할머니 두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계셨다. 벌써 영업을 하시는 줄 알고 들어가려니 "아직 안 열었어요. 조금 이따가 오세요"라는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시고 음식 장만에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식당 주변 곳곳에 어르신들과 점심을 먹으러 온 듯한 일행이 눈에 띄었다. 다들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윽고 정오가 다 돼 식당에 들어갔는데 벌써 친한 동네 할머니들께서는 자리를 잡고 계셨다. 기자 일행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할머니 두 분이 너무도 자연스레 옆에 앉으신다. 살짝 당황하는 사이 새로 들어오신 할머니 일행도 다른 자리에 합석을 하신다. 알고 보니 식당이 작다 보니 계속해서 밀려드는 동네 손님을 받기 위해 합석이 시작됐고 이제는 으레 빈자리가 보이면 그냥 앉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불편함보다는 정겨움이 더 컸다.
식당 주방의 큰 냄비에는 쑥국이 끓고 있었고 작은 냄비에는 무조림이 가득했다. 멸치볶음과 떡볶이, 잡채 어느 하나 윤기 나는 모양은 아닌 투박함 그 자체였지만 오히려 입맛을 당겼다. 밥도 쌀밥과 감자를 숭숭 썰어 넣은 감자밥 두 종류였다.
여기저기서 모아 놓은 것인지 접시의 크기와 색깔이 달랐지만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은 '밥 먹는 데는 지장없잖아'라는 듯 저마다 접시를 하나씩 집어 들고 차려놓은 음식을 조금씩 접시에 담기 시작했다. 우리도 접시를 들고 어르신들의 뒤를 이어서 음식을 퍼 자리로 왔다. 접시에 담긴 음식은 딱 3000원어치였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이 정도니 3000원이겠지'라고 생각할 때쯤 주인 할머니께서 두 개의 접시를 내놓으시며 "가자미식해랑 오징어무침이에요"라고 하신다.
앉아 있던 사람들은 앞에 놓여 있던 접시를 들고 가 가자미식해랑 오징어무침을 떠 담았다. 우리도 당연히 접시 한쪽에 두 반찬을 추가로 담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다시 주인 할머니께서 큰 웍을 내려놓으신다. 이번엔 말씀이 없으셨다. 얼른 눈을 돌려보니 감자조림이었다. 그렇게 주인 할머니께서는 계속해서 뭔가를 꺼내놓으셨는데 모든 반찬이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댁에서 먹었던 음식처럼 투박하지만 정이 가득한 맛이었다.
더 먹고 싶었지만 밖에서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많아 죄송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인 할머니께 건네며 "그냥 다 받으세요" 했더니 주인 할머니께서는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와~ 오늘 팁 받았네. 그래도 잔돈 받아가지"라며 거스름돈을 세려 하셨다. 다시 한번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고는 도망치듯 식당을 나왔다. 아직도 이런 식당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고생하시는 주인 할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이런 곳이 오랫동안 우리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겹쳤다.
이번 출조는 진한 손맛과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는 출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