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래를 바라보는데, 한국은 과거만 들춰봐
김영선(이하 김) : 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라가 외교를 잘못하면 너무나 치명적인 결과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공희준(이하 공) : 제가 그동안 몹시 궁금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기념일에 천안문광장 망루에 올라가 중국군 군사행진을 사열한 행동이 중국 시장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 여부입니다. 한국의 학자와 기자들은 박 전 대통령의 그러한 결정을 미숙하고 어리석은 실패한 외교의 표본이었다면서 엄청 부정적으로 평가해왔거든요. 따라서 중국에서 장사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히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고요.
김 : 아닙니다. 실상은 딴판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지의 중국인 거래처들에게 “남한 대통령이 한중 우호 증진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업무상의 발언권도 커집니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망루에 올라간 일이 못마땅하게 보였겠지만, 중국 현지에서 생활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중국인들 앞에서 말발을 세울 수 있는 유리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충칭의 옛 임시정부 청사 건물을 방문한 일은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공 : 실질적인 외교적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은 한국 국내 여론을 더 의식한 일종의 내수용 외교였네요.
김 : 중국과 일본은 앞에서는 서로 험한 말들 수시로 주고받아도 뒤에서는 철저하게 상호 실리를 추구합니다. 상대방을 돈벌이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우리나라만 실리 대신에 명분에 매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명분만 염두에 둔다면 북한이야말로 중국의 진정한 혈맹이자 형제의 나라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피로 맺어지고 다져진 인연입니다. 우리는 6ㆍ25 전쟁에서 중국이 북한을 원조한 일만을 주로 기억해왔습니다. 국공내전에서 북한 김일성 정권이 중국의 모택동에게 결정적 도움을 준 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공 : 만주에 진입한 장개석의 국부군에게 쫓긴 홍군이 압록강을 건너가 북한 영토에서 피난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중국 공산당이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는 후일담은 저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 : 국공내전 당시에 지원을 제공한 데 대한 보답으로 중국이 북한에 출병하는 바람에 우리는 1ㆍ4 후퇴의 쓰라린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을 마냥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조중(朝中) 관계로 불리는 양국 사이가 소원해진 사태는 꽤 오래된 현상입니다. 한국사회는 국제정세의 이와 같은 급격하고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에 여전히 무지하고 무감각합니다. 그로 인해 보수세력은 중국을 중공(中共)으로 폄하하며 중국과 북한을 무조건 한통속으로 치부합니다. 진보진영은 21세기 중국인들은 관심도 없는 재중국 조선인들의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왕에 중국 대륙에 갔으면 살아 있는 현대 중국인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해야지, 역사책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한국인들과만 왜 자꾸만 대화하려고 시도합니까?
공 : 밖으로 보이는 중국의 모습은 매일 경극이나 무대에 올리고, 길거리에서 쿵푸나 연습하는 수준 아닌가요? 과거팔이 분야 혹은 추억팔이 종목에서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끝판왕 내지 최고존엄으로 보이거든요.
김 : 중국은 과거를 위해 과거를 파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현재를 위해 과거를 팔고 있습니다. 장예모 감독이 제작한 공연물의 수입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합니다. 문제는 중국이 21세기의 굴뚝 없는 공장인 현대적 연예산업을 진흥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준 거의 모든 지식과 전략과 기술을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전수해줬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과거에 수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했습니다. 현재는 여러 민족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만 가공하면 인기 높은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수 있는 인물과 소재와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합니다.
공 : 중국인들은 현대에 팔릴 수 있는 과거만을 채굴한다는 의미이네요. 장사 안 될 것 같은 역사는 여건이 무르익을 때가지 일단은 고이 묻어두고요.
김 : 현재와 과거에서 전자가 갑이고 후자가 을인 곳입니다.
공 : 정말 무지 부럽네요. 한국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과거가 갑이 되고, 현재가 을이 됐습니다.
한복은 고려옷인가, 조선옷인가
김 : 중국이 무척이나 포용적인 사회임을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가 한복이라고 일컫는 옷이 조선시대 옷입니까? 고려시대 옷입니까? 아니면 삼국시대 옷입니까?
공 : 우리가 상식으로 이해하는 한복은 조선시대에 우리민족이 입던 옷 아닌가요?
김 :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한복이 아닌 조선복이라고 불러야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의 일상적 의복은 중국의 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 :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촬영된 사극들에 등장하는 옷들은 동시대 중국의 의복들과 크게 구분되지를 않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조선 후기에 들어서고, 중국이 청나라 왕조에 접어들 즈음에야 오늘날에 나타나는 것처럼 두 나라의 옷 모양이 확 달라진 것 같습니다.
김 : 중국이 한복을 탐낸다면 그건 그들이 배타적이고 침략적인 탓이 아닙니다. 한복이 지금 시대에 돈이 되는 까닭에서입니다. 혹시 저를 모화주의에 찌든 사대주의자로 오해하실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중국에 고운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사람예요.
공 : 왜 그런가요?
김 :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하면 중국에서 운영되는 제 사업체를 최근 현지의 중국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제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에 자유롭고 신속하게 드나들 수 없는 상황을 틈타서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친중주의자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저는 중국이 포용적 사회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좀 튀는 행동을 해도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워낙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탓에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제가 만약 이 나이에 빨간 스타킹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것도 가슴골이 푹 파인 야한 웃옷을 입고요. 그러면 이 광경을 바라본 행인들이 저에 관해 나쁜 방면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겁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모습과 대면해도 뒤에서 손가락질하거나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지를 않습니다.
체제가 아무리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국민들이 아무리 금전을 게걸스럽게 밝혀도 중국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우리가 좌파라고 금기시하는 제도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불온시하는 관행을 중국 인민들은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통상적으로 체험합니다. 그곳에서는 타인을 함부로 깔보거나 무시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을 받습니다.
공 : 한국인들이 매일 전해 듣는 권위주의적이고 봉건적인 패권국가 중국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네요.
김 : 권위주의도, 봉건주의도 전부 지나간 구시대의 잔재일 뿐입니다. 중국은 그와는 정반대로 매우 미래지향적이에요. 과거의 굴레에 갇힌 나라가 뭐 하러 천문학적 국가예산을 투입해 과감하게 우주개발에 나서고, 거액을 들여 야심찬 달 탐사에 착수합니까? 중국은 바야흐로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달에 유인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첨단 항공우주기술이 전제되어야 실현 가능한 목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앞선 과학기술에 좀처럼 주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 :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중년 사내가 벌거벗고 김치용 배추 씻는 미개한 나라로 여겨집니다.
김 : 항공우주기술이 앞서간다는 건 군사기술도 선진적이라는 징표가 됩니다. 우리는 이 무섭고 자명한 현실에 눈을 감고 있어요.
공 : 남한에서는 중국에서 기술력 있는 제품이 개발ㆍ출시됐다 싶으면 ‘대륙의 기적’으로 평가절하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김 : 질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이 낙후된 부문이 아직 많습니다. 그러나 양적 견지에서는 중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입니다.
공 : 인해전술의 나라니까요.
김 :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들 간의 세력관계에서는 질적 우위가 먼저일 수가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처럼 국토가 인접한 국가들의 역학구도에서는 수량으로 압도하는 게 우선입니다. 숫자가 곧 진리요 정답인 셈입니다. 중국은 망망대해의 광활한 태평양은 몰라도, 여객선으로 몇 시간이면 횡단할 수 있는 황해 바다 정도는 전투기로 새까맣게 뒤덮을 능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야 중국의 벌떼작전에 만반의 대응책을 사전에 강구할 수 있겠지만, 산동반도나 요동반도에서 이륙한 초음속 항공기가 한반도로 몇 분 만에 날아온다면 솔직히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그걸로 게임 오버에요.
공 : 제2롯데월드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 잠실야구장 가는 데 무슨 페라리나 포르세가 필요하겠습니까? 전동 퀵보드 한 대면 충분하지. (③편에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