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수준 증가와 고령화로 전문적 간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일본의 경우 이를 30여 년 전 제도화 한 반면, 우리나라는 표준화된 교육체계 및 법적 지원 미비로 인해 국민에게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보건의료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전담간호사(가칭) 양성 방안 모색을 위한 한·일 학술 세미나’에서는 인정간호사제도를 운영 중인 일본의 사례를 통해 국내 전담간호사(가칭) 필요성 및 양성 방안이 논의됐다.
일본간호협회 아키요 키자와(Akiyo Kizawa) 상임이사는 이날 ‘일본 인정간호사 제도 및 간호인재 양성 노력의 성과’를 주제로 “일본은 1995년 출범한 인정간호사제도로 현재 약 2만3000여명의 인정간호사가 활동 중이며, 이들은 간호 질 향상은 물론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인정간호사는 1995년 일본간호협회 주축으로 마련된 인정간호사 21개 특정분야(A과정)가 마련된 이후 정부 중심 위원회와 협회가 마련한 ‘특정행위연수’가 포함된 19개 특정분야(B과정) 등 2가지 분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아키요 상임이사는 “일본 인정간호사제도는 인구 고령화, 의료의 전문화 및 고도화 등 보건의료 환경변화 대응하여 감염, 배설케어, 만성심부전, 당뇨병 등 임상분야 중 특정 간호업무를 수행할 간호사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면서 “일본에서 인정간호사가 되려면 5년 이상 임상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약 600~800시간 정도의 교육과정을 거친 뒤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약 6개월에서 1년 이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욕창케어, 완화케어, 인공항문 및 인공방광 케어, 당뇨병 투석 예방지도 관리, 배뇨자립지원, 중증환자 이송, 치매케어 등 많은 특정행위에 대해 지도료 및 수가 가산 등을 법적·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아키요 상임이사는 “인정간호사 양성을 위해 일본간호협회는 인정간호사제도위원회, 인정간호사교육기관심사회 등의 운영을 통해 양성 요건을 갖춘 교육기관을 심사하고, 심사를 통과한 교육기관에서 인정간호사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인정간호사제도는 까다로운 교육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수준 높은 간호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정간호사의 질 높은 간호서비스 제공이 확인되면서 행위별 수가가 지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정간호사는 특정행위 관련 간호사 연수를 받은 후 프로토콜에 제시된 증상 범위 내라면 의사의 지시 없이 간호사의 판단 하에 특정 간호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며 “기관 카테터 교환, 방광루관 교체, 인슐린 투여량 조절 등 38개 행위를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키요 상임이사는 “일본은 올해 10월 국민에게 양질의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간호사 등의 확보 촉진을 위한 조치에 관한 기본지침’을 30년 만에 개정하고 간호사 양성, 근무환경 개선, 처우 개선 등을 비롯해 인정간호사의 자격취득, 특정행위 연수 등도 명시화했다”며 “이 같은 법적 지원 하에 국가에선 보조금을 지원하고 간호사 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서은영 이사(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도 ‘한국 간호업무의 세분화 및 특정 간호 분야별 전담간호사(가칭) 현황’ 주제로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특정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들이 자생되어 왔지만, 이들에 대한 표준화된 교육이나 제도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소득수준 증가 및 고령화로 전문적 간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진 만큼 앞으로 이들을 위한 표준화된 교육 체계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간호협회 간호연수교육원이 2023년 상반기 동안 전국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 163곳을 대상으로 특정 간호업무를 전담하는 간호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 68개 의료기관에서 17개 분야별 전담간호사(가칭)가 있으며 특정 간호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7개 분야는 감염, 신장투석, 장루 욕창, 호흡기, 당뇨, 호스피스, 종양, 상담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서은영 이사는 “전담간호사(가칭)들은 항암프로토콜이나 수술 전·후관리 교육지침 등 표준지침을 마련하고 환자·보호자 교육 및 상담, 다학제적 팀 간호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며 “그러나 특정 간호업무 수행에도 보상은 없는 경우가 많고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에서 자생한 17개 특정 간호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전담간호사(가칭)를 중심으로 교육체계 및 지원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전담간호사(가칭)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체계적인 역량 강화 시스템을 통해 국민 건강증진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들도 보건의료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국민에게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전담간호사(가칭) 양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아산병원 감염관리센터 박민수 전담간호사(가칭)는 “전담간호사(가칭)가 난이도 있는 간호실무 영역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간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 관할 하에 명확한 의료인 간 업무범위가 확립돼야 한다”며 “전문적 간호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커지는 만큼 특정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전담간호사(가칭)에 대한 보상, 수가 인정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료원 당뇨교육 김내연 전담간호사(가칭)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간호업무에 따라 특정 간호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분야별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이에 따른 체계적 교육과정과 그 업무를 수행할 지식과 능력을 평가할 자격인정 제도, 지속적 역량 개발을 위한 자격갱신 제도, 보상체계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최훈화 정책전문위원은 “일본은 1995년 인정간호사제도를 마련하여 간호사 직업능력 개발 및 역량 향상, 숙련된 간호사를 배출하며 국민건강증진에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된다”며 “간호의 정밀화와 세분화가 요구되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특정 간호업무분야를 정립해 명칭을 표준화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적정한 보상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임강섭 간호정책과장은 “전담간호사(가칭)를 표준화하고 제도할 시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전문가단체인 대한간호협회가 전담간호사(가칭) 교육과정, 인정과정, 운영방안 등에 대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정부도 그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등 제도화를 고민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