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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0해당 언론사가 채널 주요기사로 직접 선정한 기사입니다. 뉴스검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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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영산포 일본인 지주 가옥 다다미와 골풀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12
- [전남인터넷신문]나주 영산포 거리는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도 잘 알려있다. 일제식 건물이 많이 지금도 남아 있는 영산포에 일본인들이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02년부터이다. 영산포에는 많은 일본인 진출했는데, 그중에서 구로즈미 이타로(黑住猪太郞)는 대표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며, 그가 살았던 가옥은 지금도 남아 있다. 구로즈미 이타로가 나주 영산포로 이사를 온 시기는 1905년으로 그의 나이 32세 때이다. 목포를 거쳐 나주 영산포에 도착한 그는 은행에서 농지매입자금을 빌려서 영산강변의 저렴한 땅을 사서 개간했다. 1909년에는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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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영산포와 일본 구마모토의 골풀 식품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13
- [전남인터넷신문]우리나라 나주 영산포와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県) 야쓰시로시(八代市)는 과거 돗자리 최대 산지라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차이점이 있다. 나주 영산포는 앞의 기고문에서 여러차례 서술했던 것 처럼 국내 최대 화문석 생산지였으나 국내 수요의 감소 국내외적으로 중국산과 가격 경쟁에서 뒤져 지금은 생산이 되지 않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시는 지금도 일본산 다다미 중 80-90%를 책임지고 있다. 다다미 수요가 많은 일본에서 일본산 다다미의 시장 점유율이 높다는 점은 규모가 제법 되나 주택의 서양식화, 저렴한 중국산에 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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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화문석 재료 골풀과 나주 영산포종 인초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05
- [전남인터넷신문]돗자리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는 왕골(Cyperusexaltatus var. iwasakii), 골풀(Juncus effusus var. decipiens), 세모고랭이(Schoenoplectus triqueter) 등이 있다. 사초과의 왕골(莞草)은 열대지방에서 숙근성(宿根性)이나, 온대지방에서는 1년생 내지 2년생 초본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유의 공예작물로 화문석 제작에 많이 이용되어왔다. 전남에서는 과거에 나주군 삼도면(현재 광주시 광산구 삼도동)과 함평군 나산면에서 왕골을 많이 재배해서 돗자리 제작에 이용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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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영산포 화문석 재료인 골풀의 기능성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14
- [전남인터넷신문]과거 나주 영산포에서 화문석에 제작에 이용되었던 것은 인초라 불리는 골풀이었다. 당시 화문석 생산이 왕성했을 때 골풀이라는 이름보다는 인초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화문석을 제작했던 곳들은 인초공장으로 불리었으나 어르신들은 화문석 재료에 사용된 골풀을 왕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왕골이 돗자리 생산에 많이 이용된 전통이 있었고, 그 당시에도 왕골이 일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전후로 나주에서 화문석 생산이 한창이었을 때 이처럼 왕골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인초공장에서 수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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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화문석 최대 산지였던 나주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04
- [전남인터넷신문]화문석(花紋席)은 꽃문양 자리로 꽃자리라고도 한다. 자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일본의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다다미 유래는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우리나라 골풀(藺草) 방석을 이용하다가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에 에도에 수립한 무가 정권) 때에 다다미로 발전했다고 한다. 화문석은 역사에도 나오는데, 신라시대에는 돗자리 생산을 담당하였던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돗자리 짜는 장인(匠人)을 석장(席匠)이라고 했으며, 주로 지방관청에 속해 있었다.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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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영산포 돗자리 문화와 골풀의 관상가치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17
- [전남인터넷신문]시골에서 골풀은 매우 친근한 풀이다. 과거 골풀은 메뚜기나 미꾸라지 아가미를 꿰는 데 사용되기도 해 꿰미풀이라는 이름이 있다. 골풀의 줄기는 돗자리, 슬리퍼, 핸드백, 바구니, 모자, 방석, 벽지 등을 만드는 데도 이용되었다. 나주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 골풀을 대량으로 재배하였고, 재배한 골풀을 이용해서 돗자리를 만들었으며, 1930년대 이후 국내 최대 골풀 돗자리 생산지였다. 국내에서 자생하는 골풀속(Juncus) 식물은 17종이 보고되어 되어 있다. 나주에서 돗자리를 만드는 데 이용했던 재배종은 골풀(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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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나주 둘러보기: 일제 강점기의 영산포 권세가 집, 일본인 지주가옥
- 전남인터넷신문 2021-01-11
- 전남 나주군 영산포 시장은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에 일본 사람 흑주저태랑(黑住猪太郞)의 소유지가 되었다가 지금까지 옮기지 않고(영산포 중앙)장으로 보아 오던 중 지난 칠일에 돌연히 지주 흑주로부터 장을 가마니검사소 광장으로 이전하라며 시장의 가게를 일일이 뜯게 하여 ‘쇠울’을 막음으로 일반 장꾼들은 할 수 없이 사분오열의 상태로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지난 십이일에는 전 시장에서 북으로 약 사오정되는 하야희삼랑(河野喜三郞)의 상원(桑園)으로 이전하였다. 그 자세한 내용을 탐문 한 바에 의하면 구시장은 영산포 시가지의 중앙임으로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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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영산포 인초와 골풀 직조의 문화적 가치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16
- [전남인터넷신문]나주 영산포에 거주하는 80대 이상의 어르신들께 인초(藺草)를 질문해 보면 모르는 분들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나주 영산포는 인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기억과 폐허가 된 동신인초 공장 외에는 인초문화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골풀의 한자 이름인 인초(藺草)가 나주 영산포에서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명한 것은 영산포가 과거에 꽃문양이 있는 자리(돗자리 등)의 국내 최대 산지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영산포에는 많은 돗자리 공장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것들은 거의 다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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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시민들은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
- 가톨릭프레스 2023-11-16
- 야마구치현을 걷는 도중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 한참을 걷다가 퇴근 중인 젊은이들을 만났다. 도쿄까지 걸어가는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는다. 젊은이들의 눈빛이 빛난다. ⓒ 이원영미와 후미에(三輪文惠) 상은 6년 전 필자가 생명탈핵실크로드 때 신 야마구치를 출발해서 우베역으로 가던 때에도 22킬로를 걸었다. 너무 반가웠다.2017년 생명탈핵실크로드에서 후미에상이 함께 걸었던 기록오늘의 행진도 앞장선 후미에상. 마주 오는 차량 속 운전자와의 교감을 함께 즐긴다.▲ 조금 후 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듯. 이때도 후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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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최고 소득 작물이었던 인초
- 전남인터넷신문 2021-08-06
- [전남인터넷신문]나주 농특산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배이다. 지금은 그렇지만 약 50년 전에는 인초(藺草, 골풀)와 배가 자웅을 겨루었다. 조선일보 1971년 12월 5일자 신문에는 『나주의 인초 꽃자리가 배와 어깨를 가지런히 하여 서로 특산물의 앞자리를 다투고 있다. 복숭아와 배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나주군 금천면 삼거리 과수원에 둘러싸인 마을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쌓은 굴뚝엔 하얀 페인트로 쓰여진 ‘나주군원예협동조합 인초공장’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공장 문을 들어서면 ‘짤까닥 짤가닥’ 규칙적인 직기의 소음과 소녀들의 드높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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