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후 4개월이 넘게 지났다. 당시 피해자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고충으로 인한 인사 전보 요청을 20명 가까이 되는 전·현직 비서관에게 말했지만 묵살됐다”며, 시장을 정점으로 한 업무 체계를 지적했다.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후 성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당한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들이 전보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고, 피해자 측은 피해자와 비서실 관계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반박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유포되는 등 2차 가해가 이뤄졌고,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은25일 의원실에서 진행한와의 인터뷰에서“현재 피해자의 입장과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공론의 장으로 다시 끌어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며 시정질문 취지를 밝혔다.
그는 지난달18일 제298회 서울특별시의회 정례회 제3차 본회의에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에게▲박 전 시장 재임 당시 시장실의 과도한 별정직 운영▲성별에 따른 명확한 직급 구분▲비서 선발의 기준과 절차 부재▲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대한 안일한 조치 등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8월엔 서울시 및 투자기관의 피해자 보호 의무와 시책 마련, 2차 피해 방지 등에 관한 조항 등을 담은‘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이러한 문제의식이 시정질문까지 이어진 것이다.
권 의원은”박 전 시장 사망 직후 많은 시민단체와 학계에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지만,당시에는 다들 부담스러워 했다“며”8월에는 코로나19로 시정질문을 하지 않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해가 가기 전에 주목도가 높은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별정직, 공적 자금을 명분 있게 사유화하는 과정“
그는 서울시장실에 별정직이 과도하게 많았던 부분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직급,지휘 등 위계가 성별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도 성 관련 문제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6월 30일 기준 서울시장실 직원 22명 중 17명은 별정직이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공적 자금을 명분 있게 사유화하는 과정“이라며, ”사적 친분을 기반으로 한 인맥으로 채워진 조직에서 시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모든 행정과 예산까지도 관철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정치적인 행보는 사적인 영역이어야 하고 공적인 자산까지 투입하는 부분까지 용인해선 안 된다”며“제도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당시 시장실 별정직17명 중2급과4급은 모두 남성,행정직 중 가장 높은 직급인 행정5급도 모두 남성이었다.반면 행정직 하위직급8, 9급은 모두 여성이다.권 의원은 이를“유리천장을 넘어 단단한 성곽을 마주한,고위직급의 남성연대가 공고하게 들어찬 공간”이라고 표현했다.하위직급의 여성이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용기를 내서 문제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21대 국회가 여성이 역대 최다라고 하지만20%가 안 됩니다.서울시의원도109명 중 여성이20명 조금 넘는 정도죠.성평등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유리천장이 여전히 존재하고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틀입니다.주요 조직에는 남성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성 관련 모든 문제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비서 선발·업무 규정 매뉴얼 마련해야”
서울시에는 비서의 역할과 직무에 관한 공식 매뉴얼이 없다. 서정협 권한대행은 시정질문에서 “통상적으로 인사과 추천을 통해서 면접, 선발하는 절차로 진행을 해 왔다“고 밝혔다. 이에 권수정 의원은 서울시에 매뉴얼 마련을 요청했다.
권 의원은”접대 등은 필요하더라도 주요 업무가 아닌 최소화 되어야 한다“며2018년 인사혁신처가 제작·배포한‘비서업무 매뉴얼’을 기준으로 제시했다.인사혁신처는 비서를‘숙달된 사무기술을 보유하고 직접적인 감독 없이도 책임을 수행할 능력을 발휘하며 솔선수범의 자세와 분별력을 갖고 주어진 권한 내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간부적 보좌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권 의원은 지난4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사건을 의뢰했을 때 서울시가 이를 인지한 후 취한 조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당시 가해자는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한 감사위원장의 의견에 따라 대기발령 조치만 받았다.그러나‘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2항’에는‘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서 권한대행은 해당 조항을 모르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 등에서 나타난 신호는 피해자에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어요.한 공간에서 마주쳐야 하는 상황을 방치한 것입니다.서울시가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야 합니다.이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되어야 합니다.”
“성별 아닌 ‘어떤 감수성으로 시정 풀어나가는지’가 중요”
내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헌까지 개정하며 후보를 내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여성 후보 20% 가산점’ 적용 여부를 두고 내홍을 겪고 있다. 언론은 사상 첫 ‘여성 서울시장’ 탄생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권수정 의원은 선출될 시장의‘성별’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그는“(여성 시장이 선출되더라도)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젠더 문제에 균형적인 관점을 가진 여성이 시장으로 일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며, “결국 성별이 아닌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시정을 풀어나가는지가 핵심이다.더 중요한 것은 고 박원순 전 시장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발언”이라고 밝혔다.
권 의원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하는 것이 정의당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시의회 안에서 운신의 폭은 좁지만, 그와 연대하는 목소리는 의회 바깥에 있다.
“의회 안에서 저의 스피커가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 전 시장 문제도 결국 바깥에서 연대 단체, 시민단체 들과 함께 손잡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시민분들과 단체들이 저의 힘이에요. 그 목소리가 작지 않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완성 시키기 위해 집권 여당과 싸우고 야당과도 협력하며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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