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은 서화미술회 출신이며, 노수현과 함께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심전(心田)에서 한자씩 가져와 '심산(心汕)'과 '청전(靑田)'이라는 호를 각각 하사받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1920년 4월 28일 자 [매일신보]에서 이상범과 노수현은 안중식 산수화의 적통을 이은 수제자로 언급되며 화명이 더욱 높아졌다. 또한 두 화가는 1923년 11월 3일부터 5일까지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전을 개최하였으며 작품이 거의 완판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1월 4일자[매일신보]에는 2인전의 성공을 전하는 기사와 함께 이상범의 이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스타 작가로의 관전풍 산수화를 주도하였으며, 1933년 설립한 청전화수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해방 후에는 설악산이나 금강산을 대관산수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전원 풍경이나 그곳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촌부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부터 홍익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함과 동시에 1950년대 후반 실경 스케치를 근간으로 한 '청전양식'을 완성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가로의 긴 화면을 따라 근경에 계류나오솔길을 횡으로 배치하고, 그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을 등장시키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잡목이나 수풀이 우거진 사이로 소를 몰거나 지게를 맨촌부, 또는 머리에 짐을 얹은 여인이 집을 향하는 장면을 등장 시켜 친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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