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관식은 이상범 처럼 우리 산천을 스케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으로 한국적 실경산수화의 전형을 제시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해방 후 그는 관전을 외면한 덕분에 미술계의 주요 직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1949년 창설된 의 심사위원으로 화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그는 명승지가 아닌 평범한 농촌 풍경에 도원경의 이미지를 절충하여 한국 산천을 이상향으로 전환하는 작품들을 다수 제작하였다.
은 작가의 사회적 위상이 높았던 1955년 가을, 전라북도 전주의 완산을 여행하며 그린 것이다. 화면의 대각선으로 배치된 길과 돌다리를 따라 파노라마처럼 전개된 기와집과 초가집, 뒷산의 허물어진 옛 성벽, 나무들과 복사꽃 등에서 사실적 현장감이 발견된다. 거대한 화면을 가로지르는 길과 돌다리는 마을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것처럼 구도에 안정된 통일감을 주는 것이 특징적이다. 여기에 복사꽃에 의해 도원의 이상경으로 전환된 마을 전체를 뒤덮은 적묵법이나 파선법에 의해 만들어진 장대한 이미지와, 먹색이나 갈색의 차분한 색조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작가의 경외심을 시각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근경에서 마을로 향하는 지팡이를 든 노인과 머리에 짐을 얹은 소녀는 현재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시각적 장치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창작태도는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조선의 명승지와 그곳을 유람하는 여행객을 화폭으로 옮겨 한국적 산수화를 최초로 완성한 겸재 정선에 비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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