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섭은 황해도 장연 출생으로 도쿄의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돌아와 모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고, 1.4 후퇴 때 부인과 함께 월남했다. 그는 서울에서 , , ,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950년대 후반 국전에서 수차례 특선을 하여 초기 박항섭의 작품은 구상적인 형태 묘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인체를 길게 변형하는 등의 기법을 써서 환상적인 화면을 구사하였다.
내용적으로는 생명, 설화, 원시, 문학성을 담으면서 초현실주의적인 새로운 경향을 추구하였다. 그는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미술교사직을 그만두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그를 아껴 벽화를 맡기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었지만 늘 가난하였다. 1979년 전시를 앞두고 작업에 몰두하던 박항섭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56세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 하였고, 한국화단 최초의 '화우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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