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약관 26세로 찌든 보수에 하버드 출신 청년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입문시켰다고 하나 항간에는 지금까지도 ‘정치적 아버지’로 숭상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의 강력한 천거로 입성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소문에는 이준석 의원 부친과 유승민 전 의원이 절친이라는 말들도 사실관계 유무를 떠나 회자되었다.사실 당내 정치적 갈등이 있을 때마다 유 전 의원을 따르며 옹호했던 일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언제나 복심에는 대통령는 ‘유승민’만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평론이었다.

이런 와중 노원구에 3번이나 국회에 도전했으나 번번히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우파들은 톡톡튀는 젊은 이준석의 언변에 매료되었고, 차세대 인물로 끊임없는 성원을 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