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5년, 프랑크푸르트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에너지정책담당관을 지내고 은퇴한 나이 지긋한 노이만 박사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꺼내어 필자에게 보여주면서 입을 열었다. “한국은 이상해요. 이렇게 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어떻게 해서 에너지 전환에는 후진국인가요? 에너지 전환은 기술이 어려운 게 없습니다. 정책의 문제이지요.”

그렇다. 그 당시 지구촌은 이미 태양광이 그리드패리티를 압도적으로 달성하고 있었다. 즉 폭락한 시설비로 원전 단가를 추월하여 지구촌의 주력전기생산수단으로 등극한 것이다. 더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전환은 정책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이자, 권력투쟁의 문제다. 일찍이 독일의 연방의원 헤르만 셰어가 갈파하지 않았던가. “원전이 분산형 에너지원이고, 태양광이 중앙집중형에너지원이었다면, 에너지콘체른(기득권층)은 벌써부터 태양광으로 전환했을 것이다.” 그의 지적이 말하는 것은 어느 쪽이 자본권력에게 돈벌이가 되는 수단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