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이하 공) : 후보님께서는 지금의 서울을 폭력이 지배하는 도시로 단호하게 규정하면서 폭력의 종식을 목표로 내걸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셨습니다. 후보님께서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해온 인물과 세력은 과거에는 군사독재정권의 물리적 폭력과 맞서 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폭력에 대항하면서 그 희생자가 되었던 사람들이 현재는 폭력의 가해자로 도리어 돌변해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과 성수소수자, 청년과 실직자 같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모질게 핍박하고 있습니다. 후보님께서는 과거의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들이 현재의 제도적 폭력의 가해자가 된 역사적 배경과 실질적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의 가해자로 변신해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정치와 정치인들은 무슨 일을 해야만 할까요?
태극기 부대도, 586 세대도 과거의 경험에 예속돼
신지예(이하 신) : 제가 얼마 전에 586 세대에 속하는 어느 선배 정치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제일 먼저 물어온 내용이 과연 몇 사람이나 저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공 : 586 세대가 세력 싸움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다 보니 역시나 우선은 머릿수부터 따지고 들어가네요.
신 : 그 다음에 저에게 질문한 게 저와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고문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586 세대가 6ㆍ25 세대의 데칼코마니임은 날이 가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뜬금없이 “고문 견딜 수 있냐?”고 묻는 586 세대의 자화상은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청년들에게 대뜸 “너희들 전쟁터 나가봤냐?”고 힐문하던 과거의 50대, 즉 현재의 태극기부대 노인들의 모습과 영락없이 빼닮았다. 필자는 신지예 무소속 후보의 최근 경험담을 듣고서 “피는 못 속인다”는 오래된 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아주 확고한 결기와 의지 없이 정치활동이나 사회운동에 나서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조언하는 선의의 충고로 해석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선의의 조언을 해주신 정치인을 비롯한 586 세대의 많은 분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세계에만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에 모여서 태극기를 흔드는 어르신 세대를 만나면 그분들이 말하는 주제는 십중팔구 고정돼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상, 산업화의 기적, 고도성장 시대의 추억 같은 얘기들입니다. 단지 세대와 시대만이 다를 뿐, 자신들이 겪었던 과거의 경험담에 철저하게 의존해 오늘을 평가하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사이에 전혀 다른 부분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저는 그분들 세대의 경험과 기억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모두 기억에서 쉽게 잊히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체험을 각자의 청년 시절에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민주화 세대의 경우에는 군사독재세력과 투쟁하며 동지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적 광경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과 선악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됐으리라고 봅니다. 자기들을 탄압하려고 누군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공포감과 경계심도 몸에 밸 수밖에 없었을 테고요.
문제의 본질은 586 세대의 패권적 독점
공 : 그런데 음모론 공장 공장장처럼 시나브로 자리매김이 돼버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실제로는 학생운동권 출신이 아닙니다. 그게 굉장히 역설적이면서도 엽기적입니다. 총수 개인으로야 장사를 영악하게 잘하는 셈이지만요.
신 : 저는 이분법에 자주 좌우되고. 음모론에 쉽게 빠져드는 현상을 586 세대의 치명적 문제라고까지는 여기지 않습니다. ‘문제’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한계’라고 묘사하는 게 오히려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저 역시 나이가 든 다음에는 미래세대의 눈에 과거의 타성과 관행에 갇힌 구세대로 보일 테니까요.
저는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들에서 586 세대와 그들이 겪은 과거의 경험이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586 세대의 정치독점과 권력독식으로 말미암아 바로 지금 이 시대의 진짜 소수자들이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소외를 당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된다고 통찰했었다. 마르크스의 명제에 입각한다면 2021년의 남한은 그 지배계급인 586 세대의 경험이 일반 대중의 지배적 경험으로 강요ㆍ관철되는 사회이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의 격랑과 파고를 헤쳐 나가야만 할 아이들이 고생창연하기 짝이 없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전대협 진군가」을 들어야만 한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차트 일위를 수시로 석권하는 이 개명한 세계화 시대에….
제가 그분들을 향해서 돌직구를 날리고 있기는 해도 저는 586 세대가 때로는 애처롭고 안쓰럽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민주화 세대가 젊었을 적에 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폭력의 시대는 너무나 야만적이고 폭압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지금 천만 서울시민은,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은 1950년대도 아니고, 1980년대도 아닌, 2021년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0년대에 어울리는 변화들이 우리네 삶에서 무서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한 개인적 차원에서라면 자신의 과거 경험을 계속 부둥켜안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국가를 이끄는 정치인과 위정자들이,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학자와 관료들이 벌써 몇 십 년째 지나간 과거만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만 있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집니다. 사회를 주도하는 집단에게는 자기의 개인적 경험치를 과감하게 뛰어넘어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만 할 무거운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전진시킬 의제를 설정하고, 국가를 혁신할 비전을 제시해아만 할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 : 그러한 청사진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 : 우리에게는 아직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머잖아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정착될 동물권의 개념이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에서 부당한 배척과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성수소자들의 정당한 인권을 보장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변화하는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에 걸맞게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프리랜서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안정된 삶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관한 숙제가 그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인류 절멸을 부를지도 모를 기후변화 사태에 관한 고민도 빼놓아서는 안 되겠고요. 저는 이러한 중대하고 긴급한 현안과 위기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나갈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이제는 우리의 역량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②회에서 계속됨…)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