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강남좌파가, 돈은 강남우파가
강남의 전성시대이다. 강제적 권력으로서의 강남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을 정복했다. 강남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건자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창한 헤게모니(Hegemony)의 개념에서도 이제 남한사회를 전일적으로 평정ㆍ지배하게 되었다. 강남에 거주하는 특권층이 대한민국 공동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만 한다는 폭넓은 정서적 공감대에 지금은 누구도 큰소리로 이의를 제기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강남에 살고 있거나 강남에 이런저런 형태의 주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지도층으로 군림하기에 치명적 결격사유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현재는 중도로의 확장에 고질적 한계를 노정한 이재명 의원의 강력한 대체재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급부상한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사례가 웅변하듯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강남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어도 공인으로서는 물론이고 대선주자로서 별다른 하자가 되지를 않는다. 심지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는 방송 출연료와 저작물의 인세를 악착같이 긁어모아 결국 기어이 ‘인강남’의 꿈을 이뤘다. 유시민이 장만한 서초구 방배동의 고급 빌라는 서울 강북 지역의 평범한 서민층 입장에서는 평생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서 저촉을 해도 사기 어려운 집이다.
강남에 대한 일반대중의 적개심과 거부감을 완화한 공로의 최소한 9할은 전적으로 강남좌파의 몫이다. 강남좌파들은 진보적 사상과 이념의 소유자가 부와 특권의 상징인 강남에서 어떻게 감히 살 수 있느냐는 세간의 비판을 반박하려는 목적으로 온갖 교묘하고 현란한 논리를 부지런히 만들어냈다.
문제는 강남좌파가 그토록 열심히 개발해 유포시킨 ‘강남무죄’ 담론의 수혜자는 정작 강남 좌파들 자신이 아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위시한 강남우파가 됐다는 점이다. 영화배우 황정민의 유명하고 고전적인 수상 소감을 잠시 빌리자면, 강남좌파들이 열심히 차린 밥상을 강남우파는 단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강남좌파의 대표자였다면,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은 강남우파의 기린아이다. 문재인 정권의 황태자로 추앙받은 조국과 윤석열 정권의 2인자로 각광받는 한동훈의 관계는 적대적이면 적대적이지 우호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허나 필자처럼 서울 강북의 서민층 주거지에서 성장한 인간의 기준과 잣대로는 조국과 한동훈은 본질적으로는 오십 보 백 보인 동일한 ‘강남파’일 뿐이다. 조선시대의 토지 없는 가난한 기층 농민들에게는 동인과 서인이, 척화파와 주화파가, 노론과 소론이 전부 똑같은 양반사대부 지주계급으로 여겨졌듯이…. 이는 조국이 밟았다 실패한 전철을 철저한 반면교사로 삼지 않으면 한동훈 역시 비극적 몰락의 경로를 고스란히 답습할 것이란 뜻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임명직이 아니라 선출직 공직자 자격으로 문재인 정권에 공식 합류했다면 그의 위상과 운명이 나중에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란 진단과 분석에는 조 전 장관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 이구동성으로 동의하고 있다. 필자는 조국이 민주당 계열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면 수월히 당선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의에 기반한 선출직에게는 보스가 낙하산으로 내리꽂은 임명직이 좀처럼 가지지 못하는 권위와 보호막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조국 전 장관이 왜 선출직의 길을 마다하고 임명직 노선을 고집했는지는 오직 본인만이 그 명확한 답을 알고 있으리라.
한동훈이 구로로 가야만 하는 까닭은
많은 정치평론가들과 선거전문가들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2024년 제22대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기색이다. 그가 출사표를 던질 지역구로는 서울 강남 갑 선거구가 유력시되고 있다. 한국 최고의 부촌이자 한동훈 장관이 고등학교를 다닌 곳으로, 현역 국회의원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한동훈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탈북민 최초의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할 것이란 시나리오이다.
한동훈이 강남 갑에서 출마하면 그는 서울시 전체를 통틀어 최다 득표, 최고 득표율, 2위와의 최다 표 차이라는 3관왕의 영예를 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건 상처뿐인 영광조차 되지 못하는 실질적 부전승이다. 한동훈의 잠재력과 이름값이 빛을 발했다기보다는, 순전히 대진운이 좋았던 덕분에 거둔 어부지리일 수 있다. 권력의 부당한 외압에 굴하지 않고 원칙과 상식에 의거해 범죄수사를 소신껏 밀어붙이며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유능하고 강단 있는 특수부 검사 한동훈이 새가슴 한동훈으로, 골목대장 한동훈으로, 강남도련님 한동훈으로 순식간에 지질하게 급전직하하는 셈이다.
필자는 한동훈을 정치적 야심에 충만한 인간으로 분류하고 있다. 정치적 웅지에 가득 찬 일이 욕먹을 짓은 아니다. 핵심은 야심을 충족시키는 방식과 수단이다. 본인의 정치적 야심을 안전하고 검증된 지름길, 즉 꽃길만 걸으면서 편안하게 추구하려고 할 때 다수의 유권자들의 혐오와 반감을 자초하는 법이다.
한동훈에게 지역구도 타파의 대의를 실현하라고 광주나 전주에서 출마할 것을 종용하지는 않겠다. 이 시대의 근본적이고 선차적인 과제는 지역주의의 해소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극복에 있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부자 동네인 강남에서 출마하는 행위는 민심의 염원과 시대정신에 비추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는다. 한동훈은 양극화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지대한 극소수 강남우파들 가운데 한 명이다. 강남좌파와 강남우파가 수구기득권층으로 도매금으로 매도된 현상은 두 집단 공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 구조의 척결에 실제로는 하등의 열의도, 진심도 없었던 탓이었다. 강남좌파든 강남우파든 그들의 머릿속은 두 가지 단어로 꽉 차 있을 따름이었다. 출세와 성공.
필자는 한동훈이 이왕 정치를 시작하기로 내심 결심한 이상에는 강남을 벗어난 곳에서 제도권 직업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기 바란다. 이를테면 서울 구로구 을 선거구 같은 지역에서 출마했으면 좋겠다. 구로 을은 한때 중도 성향의 부동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던 스윙보터 지역구였으나 최근 20년 동안은 민주당 계통 정당의 텃밭처럼 돼버린 터이다.
그렇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만 작금의 구로의 현실을 관내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만을 편애하는 탓이라고 섣불린 단정해선 곤란하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을 형성한 정당들이 경쟁력 있는 후보자를 발굴하고 영입해 구로에 내보내지 않은 책임을 물어야 옳다. 더욱이 구로 을에는 구로 디지털 밸리가 위치해 있다. 구로 디지털 밸리가 한동훈이 일찍부터 흥미와 에너지를 기울여온 정보통신기술(ITC) 산업의 최일선 전초기지이자 한국경제의 미래성장 동력을 제공할 4차 산업혁명의 소중한 요람임은 굳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무려 180석의 국회 의석을 무기력하게 헌납한 참담한 사태는 서울 서남부와 경기도 서남권에서 역대급으로 참패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국민의힘이 올해 6월 1일 실시된 제8회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힘차게 약진한 성과는 경기도 서남권과 서울 서남부에서 선전한 덕택이었다.
경기도 서남권과 서울시 서남부는 거대한 유권자 규모와 엄청난 지역구 숫자를 자랑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전격적인 구로 출마 선언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적 국정운영과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서남풍을 수도권에서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이와 동시에 막대기를 꽂아놔도 민주당 공천을 받으면 무조건 당선돼온 맹점과 관행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김남국 의원으로 표상되는 함량 미달의 금배지들이 대량 양산되는 참사 역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서울 서남부와 경기도 서남권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이후로 소위 ‘잘난 놈’을 지역구 의원으로 배출하지 못해왔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출중하면 설령 출마자의 소속 정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흔쾌히 선택해왔다. 무엇보다도, 국민엄친아 한동훈의 구로구 등판은 금쪽같은 자식의 장래를 위해 교육 여건이 우수한 동네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착잡한 고민에 늘 빠져 있는 서울 서남부와 경기도 서남권 학부모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선사하는 통쾌한 낭보이자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 한동훈의 담대하고 진취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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