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쓸 것이 없었다. 매번 대충 생각나는 대로 써서 냈다. 그래서 학교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은 뒤죽박죽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하라고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대체 뭘 쓰라는 거지. 한두 시간을 흰 원고지만 보고 앉아있다 엄마에게 내밀었다. 동화책은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 아무 말이나 쓰면 되지 그걸 못한다고 매번 혼나고 숙제는 엄마 몫이었다. 그런 유년기를 보냈다. 창작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는데 삶도 사람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노래하는 영화, 음악, 사람 사이를 이야기하는 어떤 스토리에도 공감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노래는 다 사랑 이야기만 줄창 불러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좋아하거나 그리워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든 누구든 상처받을만큼 깊은 관계를 이어가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파고들 수 없어 심리학을 공부했다.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감할 수 없다면 이론적으로라도 해석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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