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비금융공기업의 부채가 추정치가 존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공기업 부채는 유사시 정부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어 사실상 정부 부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순주 연구위원은 2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기업 부채와 공사채 문제의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치를 인용해 우리나라 비금융공기업 부채가 2017년 기준 GDP의 23.5%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는 정부와 공기업의 부채를 합산한 것보다 월등히 많은 자산을 보유해 사정이 특수한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추정치가 존재하는 OECD 33개국 중 가장 많은 것이다.

33개국 평균(12.8%)을 크게 웃돈 것은 물론, 공공부문 전체의 부채가 많은 일본(17.2%)과 격차도 컸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일본보다도 더 많았다.

IMF의 추정자료는 국제기준에 따른 공식자료는 아니지만, IMF와 세계은행(World Bank)의 공식자료를 활용해도 우리나라의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2019년 기준 20.6%로 기축통화국인 영국, 캐나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보다 높았다.

금융공기업의 부채가 많은 것도 우리나라의 특징이었다.

황 연구위원이 IMF와 세계은행의 국제기준에 따라 금융공기업의 부채를 추정한 결과, 우리나라의 금융공기업 부채는 GDP의 62.7%를 기록해 비교 가능한 다른 OECD 8개국 중 월등히 높았다.

지난 2019년 일반정부 부채 대비 비금융공기업 부채의 비중은 48.8%로 8개국 중 가장 컸다.

주로 공사채 발행 방식으로 생겨난 빚이라는 점도 특징이었는데, 황 연구위원은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은행대출은 보통 담보를 요구하므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지만, 공사채는 신용도만 높으면 대규모로 발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기업은 건전성·수익성 등 자체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거의 항상 최상의 신용도를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공기업이 파산할 것 같으면 정부가 미리 나서서 채권의 원리금을 대신 지급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으로 인해 공사채는 민간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에 발행되는데, 이로 인한 금리 할인 효과는 연간 약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황 연구위원은 암묵적 지급보증이 공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에 이중적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유사시 정부의 구제금융이 거의 확실하면 공기업은 재무 건전성이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고, 정부도 무리한 사업을 할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보고서는 모든 공사채를 원칙적으로 국가보증채무에 포함하고 공식적인 관리를 받도록 해야 하며, 최소한 은행에 비견되는 정도의 자본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평상시에는 일반 채권과 같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만, 발행기관의 재무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하면 해당 채권이 그 기관의 자본으로 전환되거나 원리금 지급 의무가 소멸하는 '채권자-손실분담형'(베일인) 채권을 공기업에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학계에서는 GDP 대비 공공기관 부채 비중을 국가간 비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 경제에서 공공기관의 기능이 클수록 공공기관 부채의 규모가 크게 나타나는데 이 수준은 각국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에너지와 철도, 의료 등 좀 더 광범위한 영역을 공공기관이 담당하고 있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 공공기관 부채의 경우 대부분 상응하는 자산과 자본이 있고, 정부가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으로 지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