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영 부국장

LG에너지솔루션이 초기 중국에서 생산한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잠재적인 리스크를 발견하고 이를 교체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교체를 위해 4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전히 정확한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회사는 선제적인 교체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줬다. 크든 작든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기업의 모습을 봐왔던 소비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임이 틀림없다.

LG에너지솔루션의 공표를 본 순간 지난 2018년의 일이 떠올랐다. 그해 후배 기자가 갑자기 전화해 산업통상자원부의 ESS 화재 실태조사에 동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에 ESS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주무 부처인 산업부도 제품을 생산한 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였던 것을 고려하면 산업부의 실태조사 현장에 동행할 수 있는 것은 큰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출입기자에게 현장에서 궁금증을 자세히 물어보라고 말하고 고생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에 해당 기자가 전화해 실태조사 현장에 동행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은 가지의 동행에 찬성했지만 다른 기업들은 부담스럽다며 기자가 실태조사 현장에 오는 것을 꺼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동행 취재는 해당 기자가 산업부 해당 부서를 조르고 졸라 얻어낸 허락이었다.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한 기업들이 이를 꺼리니 산업부로서도 난감했던을 것이다. 결국 동행 취재는 무산됐고 기자는 크게 실망했다.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LG에너지솔루션의 협조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상식'적이었다. 자칫 궁지에 몰릴 수도 있었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동행 취재에 협조했을까? 아마도 자신들이 만든 배터리에는 문제가 없다는 두둑한 자신감이 있었거나 그게 아니면 문제가 있다면 어떤 질타라도 받겠다는 겸손함, 이 둘 중 하나로 판단됐다. 두 가지 모두 기업 처지에서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그럼에도 LG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게 LG의 기업문화라고 결론 내렸다.

요즘 모든 산업군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광풍이 불고 있다. 회사마다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내놓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차피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거나 아니면 ESG를 사업의 근간으로 삼아 기업시민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을 했거나다. 책임은 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거기에 맞는 행동과 잘못의 개선이 필요하다. 공자도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고치는 것에는 인(仁)이 적다(巧言令色 鮮矣仁)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결정은 3년 전 일까지 상기시킬 정도로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면 LG에너지솔루션의 과감한 결정은 분명 박수받아 마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