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1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정 사장은 취임사에서 한전을 전력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같은 정 사장의 계획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한전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3년 전 정 사장이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취임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명(社名)에 같은 ‘공사’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정 사장을 맞는 태도는 왜 다를까?
◆ 가스공사, 가스 직도입으로 밥그릇 뺏길까 노조 전면 투쟁
지난 2018년 가스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정 사장은 노조에 의해서 출근이 저지당했다. 가스공사 노조는 정 사장이 그동안 자신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하던 가스 수입과 공급을 다른 민간업체가 직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노조는 자신들의 가스 수입·공급 독점권을 유지해야 한다며 정 사장의 출근을 가로막았다.
당시 국내 천연가스 수입 물량의 94%에 달하는 양을 가스공사가 수입해 공급했고 나머지 물량을 포스코, SK E&S, GS에너지, 중부발전 등이 직접 수입해서 사용할 정도로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수입 물량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물량을 수입함에도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가격이 민간기업들이 수입하는 것보다 비싸기도 했다. 결국 비싼 가스비는 결국 사용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세관에서는 비싸게 수입된 가스공사의 수입 가격을 기준으로 민간기업들이 수입하는 천연가스에 세금을 물리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싸게 수입했는데 비싸게 세금을 내야 했던 것이다. 결국 조세심판원은 관세청에 포스코와 SK E&S에게 각각 1400억원, 1599억원을 돌려주라는 처분을 내렸다.
정 사장은 이처럼 경직된 천연가스 수입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려 했지만 내부 반발에 부딪히고 말았다. 정 사장은 회사의 이익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노조에 가로막혀 출근이 저지됐고 한참을 지나서야 정식 출근해 업무를 볼 수 있었다.
◆ 한전, 정 사장 앞세워 전기요금 올릴까
가스공사 사장에서 산업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던 정 사장은 이번에는 한전 사장으로 이동했다. 정 사장은 한전 노조의 반대 없이 무사히 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발전 산업군으로 분류되는 두 회사에서 정 사장은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가스공사 취임 때와 달리 정 사장은 한전 사장으로 오면서 어떤 소신도 밝히지 않았다.
가스공사 사장 취임 전과 같이 천연가스 직도입 확대와 같은 쟁점을 얘기하지 않았다. 여기에 산업부 차관으로 재임하면서 발전 연료 다각화라는 정부의 계획으로 인해 단기간에는 전기 발전 비용이 상승한다는 것을 정 사장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전의 숙원인 전기료 인상 얘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일각에서는 정 사장이 오히려 정부의 에너지 전환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 한전 임직원들을 압박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경제 회복에 따른 원유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고 전기 요금을 동결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언제까지 전기요금을 동결할 수만은 없고 정 사장도 회사의 수장으로서 계속되는 적자를 감수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이런 시기가 오게 되면 산업부 차관을 역임한 정 사장의 요구를 정부에서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해 한전에서는 정 사장의 취임을 크게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정 사장의 취임 찬반은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귀결된다.
업계 관계자는 "많은 공기업이 민영화됐다. 가스공사나 한전도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회사의 이익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이름에는 '공사'란 명칭이 붙어 있지만 그들은 수익을 내 주주들에게 환원해야 할 임무가 있다"며 "정승일 사장이 정부 정책만 따르고 회사 구성원들의 요구를 무시할 경우 한전 내부에서 언제라도 정 사장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